누워있는 도시, 뉴ㅜ카슬

2020. 8. 27. 06:24 from pj ja

 

도시와 건축물을 경험할 때 항시 발과 땅을 수직/수평으로 두는 동시에 내 시선은 피사체가 만드는 각도에 수평이 되게끔 줄곧 감상해왔다. 단단히 고수해온 자세에 관하여 맞다 혹은 틀리다의 판단도 없이, 이러한 관습적인 태도에 대해 인식조차 못 하고 기존의 견고한 것을 더욱더 굳혀왔다. 하지만 올해 여름은 중력을 굳건히 극복하기보다는 흐르는 중력의 방향에 따라 누워있는 것도 제법 가치 있는 일이라고 깨닫게 된 계절이다.

 

누워있다는 것은 기존의 수직과 수평에 얽매이지 않고 내 관점을 포함한 몸 전체가 도처에 깔린 중력에 더 가까워짐을 뜻한다. 이와 같이 자연스럽고 편한 상태에서 공간을 경험하는 것은 공간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차원을 넘어서 각도의 상태에 대하여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선택지였다.

 

누워서 보는 것은 두 발로 선 채로 보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높이를 점유하지만 어쩌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연의 모든 풍경을 보기 위해 드높은 산에 올라서서 얻을 수 있는 시각정보는 또 다시 거듭되는 여러 겹의 산맥들이지만, 땅에서 같은 곳을 납작하게 바라보면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일상들이 즐비해 있는 것처럼.

 

거시적인 관점과 미시적인 관점을 오가며 평면도 위를 끊임없이 걸어왔고, 위와 같은 사실들은 항상 내 옆에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각도에 대한 높이를 볼 수 없었다. 아주 소중하고 세밀한 높이를 내 손에 쥐여준 펭귄이 너무 고맙고 좋다.

 

더 나아가, 중력을 극복하는 방법은 중력과 함께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 곳에서나 작용하는 중력과 함께 걸음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무중력 상태에 이르게 되어 중력 안에서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중력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중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날이 내 앞에 올 것 같다. 

 

사실 나는 항상 시작이 서투른 사람이다. 하지만 한 번 흐름을 타게 되면 무서운 기세로 마주한 본질의 원리를 체화하여 시작이 서툴렀던 기억을 추억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에겐 속력은 어쩌면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항상 내가 집중하는 것은 방향이다. 내게 알맞은 방향의 실마리 하나만 잡으면 무의미했던 속력은 방향을 만나서 뜻깊은 속도가 된다. 

 

물론 희미한 시작의 방향을 잡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부단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 많고 위와 같은 나름의 통찰도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이다. 결과적으로 잘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인데, 결코 신이 아니기에 연속된 실패가 당연한 삶이었다. 

 

나는 내가 결코 신이 될 수 없음을 반복적으로 인정하는 일상을 살아왔고 그래서 감정의 폭은 크지 않았다. 때문에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해 한계선을 무심코 긋기도 다시 지우기를 반복하며 커다란 감정의 파동 없이 잔잔하게 지내왔다. 이러한 상태가 고착화될 시점에서 펭귄이 가진 특별한 날개를 통해 더 다양한 중력의 시작점을 안내받았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전했다.

 

뜻깊은 성장의 첫 계단을 만들어준 펭귄에게 항상 고마움을 표하는 바이며, 누워있는 펭귄과 가끔 겹쳐 보이는 뉴캐슬에 관한 짧은 글이다.

이제서야 서론보다 짧은 본론을 시작한다.

 

뉴캐슬과 게이츠헤드 중심가를 담은 지도

뉴캐슬은 타인 강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Newcastle upon Tyne 이라 명명했다. 타인 강 남쪽은 게이츠헤드.

 

아침 댓바람부터 시작된 답사를 향한 여정

도시의 방향성이 수직의 맥락에서만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고, 수평적인 시선까지 이끌어낸다. 그리고 수많은 수직선들은 강력한 수평선 하나를 지지하고 짜임새 있는 순간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뉴캐슬은 다리도 많고 다리 밑에 자그마한 상점도 많다

튼실한 아치형 다리 아래에는 귀여운 상점 하나가 있었다. 커다란 획 밑에 귀엽고 소박한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다. 동시에 우측에 가파르고 좁은 계단은 코끼리 발목 같은 다리를 붙잡고 뻗어있다. 절박하고 시원하게 상승하는 계단이 사람들을 어디로 인도할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이야~ 흡연하기 딱 좋네~! 자리에 삐딱하게 앉아서 이런저런 쓸모없는 잡담들을 늘어놓고 싶었다. 이렇게 소소한 의미들을 가진 공간들이 아치형 다리 밑에 위치해 있었다. 아치를 통해 비워진 공간이 여러 사연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으로 채워지는 여유가 마냥 즐거웠다.

 

눈으로 본 만큼 사진으로 담기지 못해 제일 아쉬운 사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작은 하천 길을 따라 당도한 곳.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고 그래서 더 궁금한 뉴캐슬, 예상 밖의 기분 좋은 일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도시가 유별나게 잘하는 일중 하나인 것 같다.

 

해변으로 가는 길

역에서 도보로 꽤 거리가 있었지만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동네의 분위기가 차근차근 변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뉴캐슬만이 소유할 수 있는 도시적 서사.

 

단 한 번의 무단횡단만 하면 마침내 바다ㅏㅏㅏ

영국에서 가장 설렜던 무단횡단이 아닐 수 없었다...!

 

바다에서 처음 느껴보는 질감

관습적인 불법을 저지르고 마침내 다다른 곳. 한낱 구름 따위가 참 사연이 많아 보이네.

 

오밀조밀한 뉴캐슬의 풍경

이름 모를 다리를 통해 타인 강을 건너 오다가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켰던 곳.

 

사진으로 내가 본 것을 온전히 담기란 매우 어렵다

카메라를 켠 채로 또다시 무단횡단해서 셔터를 눌렀다. (아주 그냥 신났지)

 

그래도 언제나 시도는 해본다

아까 보았던 다리를 다른 각도에서 담아보았다. 때문에 휴대전화 배터리는 바닥을 쳤던 기억이 난다.

 

노먼 포스터는 앞에 놓인 풍경을 과연 어떤 감정을 가지고 설계했을까

굴곡진 동선과 레이어가 추가됐을 때 타인 강을 앞에 둔 뉴캐슬은 이런 모습이다.

 

배가 오면 다리에 연결된 와이어를 이용하여 다리가 위로 올라간다

와이어에 가해진 장력이 느껴진다. 존나 힘드니까 살려줘! 라고 환청이 들리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다음 생엔 누구도 먹지 못하는 영국 켄터키프라이드취킨으로 태어나라.

 

쌩쌩 찬바람이 불어와서 더 좋았다

다시 게이츠헤드에서 뉴캐슬로 돌아가는 와중에 타인 강의 한가운데에서 휴대전화 잠금을 풀었다. 저때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약 1kg 정도 먹은듯하다. 어쩐지 배불렀어. 그나저나 영국은 바람도 맛없네.

 

검은 기둥들이 모여 만들어낸 공간에 뻗어지는 중력

출입구에서 뻗어나간 동선의 흐름은 중앙에서 밀집되어 다시 기둥을 통해 사방으로 잘게 쪼개져 나간다. 해당 기둥에서 파생된 중력은 사람의 걸음을 가두기도 하고 걸음의 유속을 높이기도 한다.

 

목마를 거 같은데

건축적 친절을 베풀어서 죽여버리기... 보시다시피 뒤쪽에 있는 화분의 상태는 전에 살았던 거주자가 이 세상을 떠났음을 보여준다.

 

뉴캐슬 대학에서 바라본 중심가

SSoA 불합격했으면 아마 여기서 비 맞고 다녔겠지?

 

pjja 나왔습니다

건방지게 왜 맛있냐. 역시 피자는 짭조름한 손맛이다.

 

나랑 같이 가자

누워있는 것은 본인이 가진 관점의 축을 회전시키는 일이고, 그로 인해 기존의 것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로 생각된다. 더군다나 그 관점의 축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어서 거스를 수 없는 관성으로 굳어진 상태라면 누워있는 것이 주는 파급력은 곱절이 될 것이다. 

 

이렇듯 뉴캐슬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은은하고 편안한 충격을 주는 도시였다. 해당 도시가 스스로 짜이고 맺어진 형태와 모습은 어딘가 친근하지만 직접 발걸음을 옮기며 경험해보면 거듭하여 뒤통수를 맞는 것 같았다. 여러 번 구타 당했지만 그것이 결코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아버리는, 그런 변태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됐었다. 새로울 것 없는 그곳의 건축물들은 서로서로 협심하여 도시를 직조하는 방법을 세밀하게 달리했고, 기존의 것을 통하여 새로움을 도시 안에 가득히 품고 있었다. 타인 강을 따라 편안히 누워있는 뉴캐슬은 발끝에 산타의 수염처럼 생긴 바다를 두고 있고, 아랫동네 게이츠헤드와 구분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그 경계의 안팎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리고 도시 구석구석에 여유로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익숙한 새로움을 보여주는 뉴캐슬은 끊임없이 뒤척이며 누워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누워있는 사람이 가끔 겹쳐 보였다. 뉴캐슬이 주는 여러 가지 감정이 내게 누워있는 법을 알려준 사람에게서 보인 이유는 그 때문일 것으로 사료된다.

 

내게 1년 중 제일 고비인 반도의 여름에서 느꼈던 모든 것을 단 몇 시간 만에 모조리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여러 번 글을 쓰고 말을 하고 행동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지막이 누워있는 뉴캐슬이 좋으니까. 더 나아가 뉴캐슬이 좋은 이유는 겉으로 의미 없어 보이고 새로울 것 없는 구조에서 단단한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짜임새 있는 그 빛은 내가 빛날 수 있게 한다. 그 빛으로 인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내가 다시 빛을 돌려주며 같이 가고 싶다.

 

한 사람에게서 커다란 도시를 보는 일은 나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던질 더 이상의 질문은 없다고 느껴지기에, 나는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지치지 않고 가속페달을 밟기로 정했다.

 

투박한 손가락 끝을 의지하며 써 내려간 이 글이 내 마음의 자그마한 일부라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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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mapoaf :